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45세 조기 은퇴를 준비 중인 30대 개미 TourRecord 입니다.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카페 선택의 기준이 하나로 좁혀집니다. 넓은가, 시원한가, 유모차가 들어가는가. 그런데 이날은 혼자였습니다. 오랜만에 온전히 커피만 생각하고 고를 수 있는 날이었죠.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못 갔을 곳을 골랐습니다. 간판 하나 없는 좁은 골목을 지나, 낡은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2층 카페. Sipply Specialty Coffee(시플리) 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습니다.

이 글의 요약

찾아가기 - 이 골목이 맞나 싶었습니다
1층은 'THIÊN THIÊN NGỌC'이라는 금은방입니다. 처음엔 지도를 몇 번이나 다시 봤습니다. 건물 위쪽에 작게 적힌 'specialty coffee'라는 글씨를 발견하고 나서야 여기가 맞구나 싶었습니다.

입구는 건물 옆 좁은 골목 안쪽에 있습니다. 오토바이가 빼곡히 세워진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면 노란 간판이 나옵니다. sipply — 1st floor라고 적힌 화살표가 계단 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식 층 표기라 우리 기준으로는 2층입니다.)


낡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살짝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 정말 카페가 있을까.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그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내부 - 좁지만, 사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넓은 공간은 아닙니다. 바 좌석과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아담한 규모입니다. 처음엔 '자리가 좀 협소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있는 내내 손님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외국인 관광객, 노트북을 편 사람, 커피 이야기를 나누는 현지 손님까지. 좁아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걸 마시고 나서 알았습니다.
내부는 원목과 스테인리스, 격자무늬 창살이 어우러진 인테리어였습니다. 오래된 사이공 건물의 뼈대를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다듬은 느낌이라, 사진 찍기에도 좋았습니다.

원두 - 여기가 진짜 특별한 지점입니다
시플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원두 셀렉션이었습니다. 카운터 옆에 원두 샘플러가 쭉 늘어서 있습니다. 각 원두의 생두를 볼 수 있고, 스포이드처럼 생긴 도구를 눌러 향을 맡아볼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메뉴판에는 'coffee beans around the world'라는 이름으로 원두가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 ombligón (콜롬비아 우일라) — 포도주스, 딸기, 망고 / 160k
- the muse (콜롬비아 우일라) — 패션프루트, 포도, 살구 / 190k
- ruby honey (에티오피아 구지) — 핑크 플라워, 체리, 만다린 / 105k
- volcanic orchard (케냐 키암부) — 오렌지, 블랙베리, 코코아 / 100k
- wild banana (베트남 망덴) — 바나나, 잭프루트, 파인애플 / 95k
- java unknown (베트남 락즈엉) — 자몽, 멜론, 밀크초콜릿 / 90k
- pure forest (베트남 꺼우닷) — 감, 아세로라 체리, 흑설탕 / 95k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케냐 같은 클래식한 산지부터 베트남 로컬 원두까지 한자리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커피를 좀 마셔본 분이라면 이 목록만 봐도 설렐 겁니다.
수상 이력 - 원두가 3위를 했습니다
제가 주문한 건 pure forest였습니다. 메뉴판에 동메달 아이콘과 함께 3rd Place라고 적혀 있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원두 카드를 보면 TOP 3 VNCP 2025라는 표기가 있습니다. 베트남 럼동성 꺼우닷(Cầu Đất) 지역, 핫증(Hạt Rừng) 농장의 카티모르 품종, 워시드 프로세스입니다. 즉 카페가 우승한 게 아니라, 이 카페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가 대회에서 3위에 올랐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매장 곳곳에 Columbus BEST CAFE 2026 배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건 카페 자체가 받은 인증입니다. 원두도 상을 받고, 카페도 인정을 받은 셈입니다.

맛 - 왜 사람이 계속 오는지 알겠더군요
핸드드립으로 내려준 pure forest는 유리 서버와 함께 나왔습니다. 잔에 따라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산미가 선명한데 날카롭지 않았습니다. 감과 체리를 떠올리게 하는 과실향이 먼저 오고, 식으면서 흑설탕 같은 단맛이 길게 남았습니다. 베트남 커피 하면 흔히 진하고 쓴 로부스타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건 완전히 다른 결이었습니다.
여태 마셔본 커피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자리가 좁아도 사람이 계속 오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그 외 메뉴
커피 외에도 시그니처 음료와 페이스트리가 있었습니다.

시그니처는 트리플 시트러스(감귤+자스민 콤부차+에스프레소), 클라우디 코코넛(코코넛 워터+커피 폼), 아몬드 라이스(콜드브루+라이스 밀크 폼) 등이 각 80k 정도였습니다. 조합이 상당히 창의적입니다.

기본 커피는 에스프레소 60k, 라떼·카푸치노 70k, 아메리카노 65k 수준입니다. 콜드브루는 16시간 저온 추출한 시플리 블렌드가 70k였습니다.

베이커리는 바스크 번트 치즈케이크 80k, 크루아상 60k, 바나나 월넛 초코케이크 80k.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 바 콤보가 99k라 가성비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정리 - 이런 분께 추천드립니다
- 커피를 진지하게 마시는 분 → 원두 셀렉션과 로스팅 퀄리티가 확실합니다. 이 글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실 거라면 이 항목입니다.
- 원두를 사 가고 싶은 분 →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박스 단위로 판매합니다.
- 숨은 장소 찾는 재미를 아는 분 → 골목과 계단을 지나 도착하는 과정 자체가 경험입니다.
다만 유모차를 끌고 가시기엔 불편합니다. 골목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고, 내부 좌석도 여유로운 편이 아닙니다. 아이를 안고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못 갈 정도는 아니지만, 유모차를 쓰신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넓고 편한 공간이 필요한 날에는 [러닝빈 후기 -> https://tourrecord.tistory.com/94]를 참고해 주세요.
[베트남 호치민 1군] 아기 데리고 갈 카페 찾다가 발견한 호치민 '러닝빈' - 넓고, 시원하고, 사진
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45세 조기 은퇴를 준비 중인 30대 개미입니다. 호치민에서 카페를 고를 때 저희 부부의 첫 번째 기준은 늘 하나입니다. "아기랑 같이 들어가도 눈치 안 보일 만큼 넓은가."
tourrecord.tistory.com
호치민에서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마시고 싶은 날이라면, 시플리는 계단을 오를 가치가 충분한 곳입니다.
혹시 호치민에서 스페셜티 커피 잘하는 다른 곳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다음 목적지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